DEATH, 죽음이란 무엇인가

DEATH, 죽음이란 무엇인가

<추천!>JUSTICE’ · ‘HAPPINESS’에 이은 아이비리그 3대 명강 ‘DEATH’

나는 ‘반드시’ 죽을 것이다

그렇다면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17년 연속 예일대 최고의 명강의 ‘DEATH’가 책으로 나왔다. 하버드대 ‘정의(JUSTICE)’및 ‘행복(HAPPINESS)’과 함께 ‘아이비리그(Ivy League) 3대 명강’으로 불리는 강의다. 그동안 우리가 생각해왔던 심리적 믿음과 종교적 해석을 완전히 배제하고 오직 논리와 이성으로 죽음의 본질과 삶의 의미를 고찰한다.

하버드대 마이클 샌델(Michael Sandel)과 더불어 미국을 대표하는 현대 철학자로 불리는 셸리 케이건(Shelly Kagan) 교수는 이 책에서 다소 무겁고 어둡게 흘러갈 수 있는 주제를 토크쇼 사회자에 비견되는 특유의 유머감각과 입담으로 흥미롭게 풀어간다. 고대에서 현대까지 방대한 철학사를 다루면서도 난해한 철학용어를 거의 사용하지 않는 그만의 교수법은 “대중철학 강의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고 평가받고 있다. 강의할 때 항상 책상 위에 올라간다고 해서 ‘책상 교수님’이라는 애칭으로도 불리는 그의 이 죽음 강의는, 예일대학교 지식공유 프로젝트인 ‘열린예일강좌(Open Yale Courses, OYC)’의 대표 강의로서 미국과 영국 및 유럽은 물론 중국과 러시아에도 소개돼 큰 반향을 불러일으킨 바 있다.





“가장 끔찍한 주제, 가장 매혹적인 강의”

오직 이성과 논리로 풀어낸 죽음과 삶의 의미

누구도 피할 수 없는 삶과 죽음의 역설




이 책은 셸리 케이건 교수가 1995년부터 예일대에서 진행해온 교양철학 정규강좌 ‘DEATH’를 새롭게 구성한 것으로, ‘죽음’의 본질과 ‘삶’의 의미 그리고 ‘생명’의 존엄성을 고찰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지금 이 순간 살아있는 사람들 가운데 죽음이 무엇인지 아는 사람은 없다. 죽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삶에서 유일하게 확실한 ‘사실’은 “나는 언젠가 ‘반드시’ 죽는다”는 것이다. 그 누구도 피해갈 수 없는 숙명이다.

“죽는다는 것은 무엇을 뜻하는가?”, “죽을 수밖에 없는 나란 존재는 과연 무엇인가?”, “영원한 삶은 가능한가?”, “영혼은 육체가 죽은 뒤에도 계속 존재하는가?” 이런 철학적 질문은 죽음을 바라보는 우리의 태도와 연결된다. “죽음은 나쁜 것인가?”, “영생은 좋은 것인가?”, “자살은 합리적인 선택인가?”, “우리는 왜 경험하지도 못한 죽음에 대해 두려워하는가?”

그런데 이 모든 질문은 결국 하나의 질문으로 귀결된다.

“그렇다면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삶이 끝난 후에도 삶은 계속되는가

죽음을 좋아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더 이상 내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끔찍하고 무섭다. 그래서일까? 죽음에 대한 두려움은 ‘죽음 이후의 삶’이라는 기대와 믿음을 낳았다. 바로 이 지점으로부터 셸리 케이건 교수의 강의는 시작된다. 죽음에 관한 모든 문제는 바로 “죽은 다음에도 나는 살아남을 수 있을까?”라는 질문에서 비롯되기 때문이다. 우선 케이건 교수는 이 질문을 있는 그대로 해석하면 “육체가 죽어도 육체는 살아남을 수 있는가?”와 같은 자기모순에 빠지기 때문에, 여기서 말하는 사후의 삶은 ‘영혼’의 존재를 상정한 개념이라고 정리한다. 그런 다음 언젠가 죽을 수밖에 없는 우리 ‘인간’이란 존재의 실체에 관한 두 가지 거대한 관점을 살핀다. 첫 번째 관점은 인간이 ‘육체와 영혼’으로 이뤄져 있다는 ‘이원론(二元論, dualism)’이고, 두 번째 관점은 인간이 ‘육체’로만 이뤄져 있다는 ‘물리주의(物理主義, physicalism)’다.



-영혼은 존재하는가

영혼의 존재를 받아들일 만한 타당한 근거가 있는지 ‘최선의 설명으로의 추론(inference to the best explanation)’으로 알려진 일련의 논의들을 살펴본다. 이 추론은 우리의 오감(五感)으로 확인할 수 없는 존재를 증명코자 할 때 사용하는, 여러 가지 설명들 중 최고의 설명을 제시할 수 있을 때 그 가설을 받아들일 수 있다고 보는 논증방식이다. 보이지 않는 존재를 가정할 때 일어나는 다른 현상들에 대한 논리적 추론이 가능하면 그 존재는 실재한다는 것이다. 케이건 교수는 플라톤(Platon)의 대화편 중 소크라테스(Socrates)의 죽음과 영혼의 불멸을 다룬 《파이돈(Phaidon)》에 대한 간략한 소개와 함께, 영혼의 존재에 대한 갖가지 옹호적인 주장들에 관해 설명하고 하나씩 반박한다. 최선의 설명으로서의 추론 중 가장 강력한 사례는 “인간에게 있는 ‘자유의지(自由意志, free will)’를 설명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영혼의 존재를 믿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케이건 교수는 영혼이라는 존재를 상정하지 않고도 자유의지를 설명할 수 있는 여러 철학적 논증을 제시함으로써, 영혼이 존재한다는 이원론자들의 (현재까지 제기된) 주장은 설득력이 떨어진다고 말한다.



-육체 없이 정신만 존재할 수 있는가

“육체 없이도 정신(영혼)이 존재할 수 있다고 ‘생각’할 수 있기 때문에 육체와 정신은 각각 다른 존재”라는 데카르트(Rene Descartes)의 주장을 자세히 살피고, 그 주장에 어떤 오류가 있는지 금성(金星)의 각기 다른 이름인 개밥바라기별과 샛별 및 둥근 사각형 등의 사례를 들어 설명한다. 또한 케이건 교수는 영혼이나 정신의 존재를 증명하기 위한 사변적(思辨的) 논증을 같은 사변적 논증으로 반박하면서, 이성(理性)으로 증명하기 매우 까다로운 존재 앞에서 쉽게 심리적 믿음을 택하게 되는 현상을 비판한다.



-영혼은 영원히 죽지 않는가

“삶이 끝난 후에도 삶은 계속되는가?”라는 질문은 사실 “육체적 죽음 뒤에도 영혼은 살아남는가?”를 의미하므로, 이 장에서는 질문의 핵심인 ‘영혼의 불멸성’에 관해 논의한다. 영혼불멸에 관한 가장 대표적인 논증은 플라톤의 《파이돈》에서 찾을 수 있다. 플라톤은 물질적이고 감각적이며 개별적인 세계와 대비되는 비물질적이고 초월적이며 보편적인 실재(實在), 즉 ‘이데아(idea)’를 제시했다. 플라톤에 따르면 영원하고 완벽하며 결코 변하지 않는 실체(實體), 예컨대 절대적인 정의(正義)나 선(善), 아름다움(美) 등은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계가 아닌 이데아에 존재하는 것들이다. 그런데 우리는 그것들을 현상계의 물질적 대상으로부터 인식한다. 비물질적이고 영원한 대상을 인식하기 위해서는 비물질적이고 영원한 존재여야 한다. 우리는 이성을 통해 이데아를 인식할 수 있으므로 이성은 비물질적이고 영원한 존재다. 이성이 비물질적이라는 것은 곧 영혼이라는 의미다. 따라서 영혼은 영원히 존재한다는 것이 플라톤의 영혼불멸 논증 중 ‘형상(形相)의 본질’에 관한 주장이다. 이 논증은 “영혼은 파괴되지 않는 순수하고 단순한 존재이기 때문에 소멸하지 않는다”는 ‘영혼의 단순성(單純性)’ 주장으로 이어지는데, 케이건 교수는 플라톤의 이 같은 논증을 흥미진진하게 소개하고는 결국 논리적 모순으로 이뤄진 치명적 오류를 찾아내 정확히 끄집어내는 대반전을 펼쳐 보인다.



-나는 왜 내가 될 수 있는가

영혼의 존재와 불멸성에 관해 살폈지만 “삶이 끝난 후에도 삶은 계속될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 답하기 위해서는 아직 논의할 문제가 남아 있다. 바로 “나라는 존재는 무엇인가?”이다. 살아남는다고 해도 그것이 내가 아니면 아무런 의미가 없다. 그렇다면 나를 나라고 말할 수 있는 근거는 어디에 있을까? 무엇 때문에 우리는 나를 나로서 인식할 수 있는가? 나의 정체는 대체 무엇인가?

케이건 교수는 ‘영혼 관점’, ‘육체 관점’, ‘인격 관점’이라는 인간 정체성에 관한 세 가지 주장을 살펴보면서 이 질문의 답을 찾는다. 우선 ‘영혼 관점’은 영혼이 같으면 동일인물이라는 주장이다. 마찬가지로 ‘육체 관점’과 ‘인격 관점’도 서로 동일한 육체 및 인격이 ‘나’를 규정하는 핵심 요소라고 본다. 얼핏 간단한 논증 같지만 깊이 파고들수록 딜레마에 빠지게 되는데, 케이건 교수는 ‘시공간 벌레(space-time worm)’ 개념에서부터 시계 수리공의 비유와 영화 〈스타워즈(Star Wars)〉에 이르기까지 갖가지 재미있고 이해하기 쉬운 사례를 들어 이 형이상학적 수수께끼를 풀어간다.



-나는 영혼인가 육체인가 인격인가

케이건 교수는 앞의 세 가지 관점 중 우리가 어떤 관점에 서 있는지 테스트해보자고 제안한다. 그러면서 ‘미친 과학자’의 뇌 교환 실험, 뉴욕에 나타난 ‘나폴레옹’의 비유, ‘복제 인간’의 사례 등을 통해 그 선택이 결코 녹록치 않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리고 이 문제는 다시 “삶이 끝난 후에도 삶은 계속되는가?”의 질문으로 연결된다. 만약 현재의 내가 죽고 나서도 나라는 정체성을 유지한 채 다른 객체로의 이동이 가능하다면 한줄기 희망의 빛을 찾아낼 수 있다. 과연 우리는 그 빛을 발견해낼 수 있을까?



-죽음의 본질에 관하여

나의 정체성 논의는 자연스럽게 “살아남는다는 것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으로 옮겨간다. 정체성 문제가 해결되면 살아남는 데 있어 무엇이 필요한지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죽었는데도 살아있다는 말은 도대체 무슨 뜻일까? 죽었다고 말할 수 있는, 즉 죽음의 순간을 결정짓는 육체적·정신적 기능은 무엇일까? 케이건 교수는 이에 대한 해답을 찾는 과정에서 다시 “죽음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죽음에 관한 두 가지 놀라운 주장

우리 주변에 널리 퍼져 있는 죽음에 대한 잘못된 편견을 짚고 넘어가는 장이다. 그것은 대표적으로 “나는 결코 죽지 않는다”라는 주장과 “인간은 모두 홀로 죽는다”는 명제다. 지금 이 순간 살아있는 모든 사람은 당연히 아직 죽음을 경험하지 못했다. 그래서 죽음이 무엇인지 모른다. 다시 말해 죽어있는 ‘상태’ 자체를 떠올릴 수 없다. 이는 “나는 결코 죽지 않는다”라는 얼토당토 않는 믿음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케이건 교수는 톨스토이의 《이반 일리치의 죽음(The Death of Ivan Ilyich)》을 예로 들어 죽음에 임박하는 순간에도 죽음을 부인하고자 하는 인간 심리의 이중성을 살펴보고, 죽음 직전에서 돌아온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 죽음과 삶이 어떤 식으로 맞닿아 있는지 살핀다. 그리고 또 하나의 보편적 주장인 “인간은 모두 홀로 죽는다”라는 명제를 분석하면서 찰스 디킨스(Charles Dickens) 《두 도시 이야기(A Tale of Two Cities)》 등의 비유를 통해 이 속에는 그 어떤 심오한 진리도 담겨 있지 않으며 진실도 아니라고 역설한다.



-죽음은 나쁜 것인가

여기서부터 케이건 교수는 본격적으로 죽음의 본질로부터 삶의 의미를 어떻게 찾아야 하는지 논의한다. 그 첫 번째로 우리가 죽음을 바라보는 대표적 시각인 “죽음은 나쁜 것인가?”라는 의문을 파헤친다. 죽음이 나쁘다면 무엇 때문에 나쁜지 그동안 이어져왔던 여러 철학적 주장들을 살핀 다음 “삶이 가져다주는 좋은 것들을 앗아가기 때문에 나쁘다”는 ‘박탈 이론(deprivation account)’을 죽음이 나쁜 유일한 근거로 제시한다. 또한 “나쁘다는 것은 존재하는 대상에게만 가능한 평가인데, 죽고 나면 나는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죽음은 나쁜 게 아니다”라는 에피쿠로스(Epicurus)의 입장과, “죽음이 나쁘려면 마찬가지로 비존재 상태인 태어나기도 전의 상태도 나빠야 한다”는 루크레티우스(Lucretius)의 비판을 통해 ‘박탈 이론’을 확고히 한다. 이 밖에 토머스 네이글(Tomas Nagle), 프레드 펠드먼(Fred Feldman), 데렉 파피트(Derek Parfit) 등 현대 철학자들의 핵심 견해도 소개한다.



-영원한 삶은 좋은 것인가

죽음이 나쁘다면 그 반대인 ‘영생(永生)’, 즉 영원한 삶은 좋은 것일까? 케이건 교수는 우리가 “영원하다”는 것의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지 반문하면서, 그러한 상황을 머릿속에서 그리는 것만으로도 결코 좋은 느낌을 받지 못할 것이라고 말한다. 소위 천국이나 극락과 같은 영원히 행복한 삶도 막연히 ‘좋은 것’으로만 주입됐을 뿐, 세부적으로 묘사하게 되면 전혀 다른 그림이 나올 것이라고 설명한다. 어떤 형태의 삶도 영원히 지속된다면 그 매력을 잃어버리게 되며, 무한한 삶은 그 어떤 고통보다도 가혹한 형벌임을 강조하고, 모든 좋은 것들은 그것이 유한하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환기시킨다.



-삶의 가치는 어디에 있는가

이제 케이건 교수는 유한한 삶에서 찾을 수 있는 가치, 다시 말해 행복의 본질에 관한 주제로 논의를 전환한다. 무엇이 삶을 살아갈 만한 가치가 있는 것으로 만들어주는가? 삶에서 본질적으로 좋고 나쁜 것은 무엇인가? 그는 우선 이와 관련한 대표적 철학 이론인 ‘쾌락주의(hedonism)’의 입장을 소개한 뒤, 로버트 노직(Robert Nozick)의 사고 실험인 ‘경험 기계(experience machine)’를 예로 들어 ‘쾌락(快樂)’이 본질적인 행복이 될 수 없음을 보여준다. 그리고 삶의 가치는 삶 그 자체가 아니라 삶 속에 채워지는 ‘내용물(contents)’에 달려 있다고 설명하면서 삶은 ‘그릇(container)’이며 그 속에 채워지는 좋은 것과 나쁜 것의 총합을 통해 삶의 가치를 평가하는 ‘그릇 이론(container theory)’에 관해 살핀다.



-피할 수 없는 죽음의 무거움

죽음을 나쁜 것으로 보게 만드는 죽음의 네 가지 특성에 대해 알아본다. “반드시 죽는다”는 죽음의 ‘필연성(必然性, inevitability)’, “얼마나 살지 모른다”는 죽음의 ‘가변성(可變性, variability)’, “언제 죽을지 모른다”는 죽음의 ‘예측불가능성(豫測不可能性, unpredictability)’ 그리고 “어디서 어떻게 죽을지 모른다”는 죽음의 ‘편재성(遍在性, ubiquity)’을 설명한다. 케이건 교수는 이러한 죽음의 특성을 이해할 때, 유한한 삶을 인정하지 않고 죽는다는 사실을 거부하는 것이 과연 우리의 삶에서 적절한 태도인지 묻는다. 또한 “죽음은 반드시 삶이 끝난 다음, 즉 삶을 영위하고 그 다음에 죽음을 맞이한다”고 말하면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대상은 삶 자체나 죽음 자체가 아니라, 태어나서 죽기까지의 과정”이라고 역설한다. 아울러 삶과 죽음은 긍정적·부정적 상호효과를 모두 갖고 있으며 우리가 부정적 상호효과만을 받아들일 때 삶은 나쁜 것이 돼버린다고 지적한다.



-죽음을 마주하고 산다는 것

우리는 “나는 반드시 죽을 것이다”라는 사실에 대해 ‘부정’하거나 ‘인정’하거나 ‘무시’할 수 있다. 이 장에서는 죽음에 대한 이러한 태도가 우리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설명한다. 그리고 더불어 죽음에 대한 ‘공포’가 정당한 감정인지, 다시 말해 죽음이 공포의 대상인지 논의한다. 케이건 교수는 공포라는 감정이 성립하기 위한 모든 조건을 분석함으로써 죽음은 공포의 대상이 아니므로 공포가 죽음에 대한 정당한 감정도 아니라고 설명한다. 때문에 “적절치 못한 감정으로 인생을 허비할 까닭이 없다”고 꼬집으면서, “우리에게 그리 많은 시간이 주어져 있지 않기에 삶을 가능한 많은 것들로 채워 넣어서 최대한 많은 축복을 누려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리고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즉 행복지수가 높은 삶을 위한 전략을 어떻게 짜야 하는지 설명한다.



-자살은 합리적이고 도덕적인 행위인가

죽음을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주제인 ‘자살’에 관해 두 가지 측면에서 고찰한다. 첫째는 “자살은 합리적인 선택이 될 수 있는가”이며, 둘째는 “자살은 도덕적으로 정당한 행위인가”다. 합리성은 ‘나’와 관련이 있으며 도덕성은 ‘남’과 관련이 있다. 케이건 교수는 우선 자살이 합리적 선택이 될 수 있으려면 “죽는 게 더 나은 삶”이 있어야 하고, 그러려면 삶과 죽음을 상대적으로 비교해 둘 중 어느 것이 나은지 판단할 수 있어야 한다고 지적하면서, 지금까지 설명한 모든 이론을 동원해 그것이 가능한지 살펴본다. 그리고 자살이 도덕적으로 정당한 행위가 될 수 있는지 ‘공리주의(功利主義, utilitarianism)’와 ‘의무론(義務論, deontology)’의 관점에서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논의한다. 엄청난 빚 때문에 이혼한 뒤 아내와 자식을 두고 자살하는 행위, 흉악범의 자살, 한 사람이 희생해 그의 장기를 이식해서 다섯 명의 환자를 치료하는 경우, 전쟁터에서 전우들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 몸으로 수류탄을 덮는 행위 등 쉽게 결론 내릴 수 없는 다양한 사례를 살펴보고 자살의 도덕성을 말할 수 있는 단서를 찾아본다.



이 책은 ‘죽음’을 테마로 하고 있지만 궁극적으로는 ‘삶’을 이야기하고 있다. 죽음이 없는 삶은 세상에 없으며, 삶이 없는 죽음 또한 존재하지 않는다. 셸리 케이건 교수는 “삶은 죽음이 있기 때문에 비로소 완되는 인간의 가장 위대한 목적”이며, “죽음에 본질을 이해하면 가치 있는 삶을 살 수 있다”고 힘주어 말한다.

세상에서 가장 끔찍한 주제, 세상에서 가장 매혹적인 강의, 시한부 선고를 받은 예일대 학생이 죽기 전에 마지막으로 들었던 죽음 강의 ‘DEATH’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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