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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갈등하는 번역

갈등하는 번역
  • 저자윤영삼
  • 출판사글항아리
  • 출판년2015-12-31
  • 공급사(주)북큐브네트웍스 (2017-02-23)
  • 지원단말기PC/스마트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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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번역가의 블랙박스를 열다……

    출발 언어를 도착 언어로 옮기기까지

    번역가의 머릿속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질까?



    번역은 단순히 언어를 바꾸는 작업일까?




    이 책 첫머리에는 다음과 같은 예문이 나온다.

    ‘Once you have made your peace with the Amazon, a Piraha village is a relaxing place.’

    네 명의 학생은 이 문장을 각각 이렇게 옮겼다.

    ‘아마존 강에서 평화를 느꼈다면, 피다한 마을이야말로 휴식에 적합한 장소다.’

    ‘아마존과 일단 화해하고 나면, 피다한 마을에서의 생활도 제법 편안해진다.’

    ‘일단 아마존에 적응했다면 피다한 마을에서 여유를 즐길 수 있다.’

    ‘아마존 생활에 익숙해진 다음에는, 피다한 마을은 휴양지가 된다.’

    한 문장을 두고 번역했음을 금세 알 수 있지만, 선택한 단어가 각기 달라 읽는 이에게 주는 인상도 다르다. ‘peace’를 어떻게 옮겼는지 보자. ‘peace’를 ‘평화’로 옮긴 첫 번째 문장은 언뜻 보기에 모범 답안처럼 보이지만, 바로 뒤에 이어지는 문장이 아마존 강에서 아직 적응하지 못한 상태를 전제하고 있기 때문에 모순적인 번역이다. ‘화해’를 선택한 두 번째 문장도 마찬가지다. ‘화해’는 ‘싸움’이나 ‘투쟁’이라는 개념과 대립쌍을 이루며, 이러한 사건이 이전에 존재했음을 암시한다. 이런 말은 아마존과 (싸울 수 있다면) 싸우고 난 뒤에야 쓸 수 있을 것이다. ‘적응하다’로 옮긴 세 번째 문장은 메시지가 한결 자연스럽고 분명하게 들어온다. 네 번째 문장은 더 나아가 ‘익숙해지다’로 옮겼다. 이러한 단어 선택은 열대기후에 적응하기가 얼마나 어려운지를 설명하는 이 문단의 내용에 잘 부합한다.

    그런데 이런 단어 선택은 어디서 비롯된 걸까? 사전에서 peace를 찾아보면 ‘평화’ ‘평온함’ ‘화평’ 등이 나올 뿐, ‘적응하다’나 ‘익숙해지다’는 보이지 않는다. 이는 사전적 단어word가 아니라 어휘lexis이기 때문이다. ‘peace’라는 단어의 의미는 ‘평화’지만 어휘의 의미는 ‘적응하다’나 ‘익숙해지다’ 등 여러 가지가 나올 수 있다. 왜일까? 언어는 상황에 따라, 맥락에 따라, 문화에 따라, 말을 나누는 두 사람의 관계에 따라 무수히 다른 갈래로 갈라지기 때문이다.

    가령 친한 친구가 ‘잘 지내니?’ 묻는다면 단순히 안부를 묻는 것이겠지만, 사이가 좋지 않은 이가 묻는다면 비아냥일지도 모른다. 또 헤어진 연인이 ‘잘 지내니?’ 묻는다면 안부를 묻는 것이 아니라 미련을 표시하는 것일 테고, 사업상 만난 이가 ‘잘 지내셨습니까?’ 묻는다면 예의상 던지는 질문일 것이다. 번역문도 마찬가지다.

    예컨대 셰익스피어의 소네트 중에 이런 대목이 있다.

    “아름다운 당신을 저 여름날에 비유할 수 있을까?”(“Shall I compare thee to summer's day?")

    아름다운 여인을 여름에 비유하는 것은 과연 어떤 의미일까? 번역자는 영국의 여름 날씨와 한국의 여름 날씨가 다르다는 것을 고려해야 한다. 무덥고 불쾌한 여름을 경험하는 사람들에게 이 시구는 셰익스피어가 표현하고자 했던 의미를 제대로 전달하지 못할 것이다. 아마도 번역자는 영국인들에게 ‘여름날’이 표상하는 느낌을 전달할 수 있는 대체물을 찾거나, 원문을 그대로 옮긴 뒤 해설을 덧붙여야 할 것이다. 어떤 선택을 할 것인지는 번역자가 선택할 몫이다.





    갈등하는 번역가



    얼마 전 한 문학평론가가 번역에 관한 흥미로운 글을 썼다. “『어린 왕자』의 번역에 대한 오해”라는 글인데, 그 글은 『어린 왕자』의 몇 대목을 짚는 것으로 시작한다. 그중 하나만을 꼽자면 비행사가 어린 왕자의 요청에 양을 그려주는 장면이 있다. 비행사가 두 번째 양을 그렸을 때 어린 왕자는 이렇게 말한다. “아이참… 이게 아니야, 이건 숫양이야. 뿔이 돋고…” 그런데 어떤 번역본은 ‘숫양’ 대신 ‘염소’로 옮기고 있다.

    그렇지만 ‘숫양’과 ‘염소’는 엄연히 다른 단어이지 않는가? 이것은 오기일까, 번역자의 실수일까? 아니면 프랑스어 원문이 아닌 일본어를 중역한 흔적일까?

    사정은 이렇다. 프랑스어에는 양, 암양, 숫양에 해당하는 각기 다른 세 단어(mouton, brebis, belier)가 있다. 어린 왕자가 비행사에게 그려달라고 부탁한 양은 mouton이지만 ‘이게 아니야’라고 퇴짜를 놓은 것은 belier다. 프랑스어에서는 두 낱말이 완전히 달라 이 같은 서술이 가능하지만, 한국어에서는 상황이 미묘하게 변한다. ‘양’을 그려달라고 했는데 ‘숫양’을 그려준 것이 무엇이 문제란 말인가. ‘숫양’도 ‘양’이지 않은가. 이 난점을 해결하기 위해 선택된 낱말이 바로 ‘염소’였다. 즉 ‘숫양’ 대신 ‘염소’로 옮긴 것은 오기도 아니었고 번역자의 실수도 아니었으며 일본어를 중역한 흔적은 더더욱 아니었다. 그것은 도리어 어쩔 수 없는 언어적 차이 앞에서 번역자가 갈등한 흔적이었다.

    한데 이런 갈등이 비단 『어린 왕자』에만 있었을까? 이 책에서 제시하는 예문을 하나 더 보자.

    ‘투아렉: 어떻게 발음하는지 안다고 하더라도 기이하게 들린다.’

    한눈에 보기에도 어색한 문장이다. 한국어로 표기된 ‘투아렉’을 어떻게 발음하는지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런데도 이 단어가 ‘기이하게’ 들리는 까닭은 무엇일까? 하지만 이 문장이 애초에 영문이었음을 기억해야 한다. 즉 영어 사용자들에게는 ‘Touareg’이라는 단어가 생소하다는 뜻이며, 이 단어를 발음할 줄 안다고 해도 여전히 낯설게 들린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이 문장을 한국어에서는 어떻게 옮겨야 할까? Touareg는 셰익스피어의 소네트에서처럼 대체물을 찾을 수 있는 명사도 아니며 주석을 달면 가독성을 해칠 수 있다.

    이처럼 언어가 다르다는 것은 문화도, 사고방식도 다르다는 의미다. 즉 번역은 언어를 바꾸는 행위가 아니라 대상 독자를 바꾸는 행위다. Touareg뿐만이 아니다. ‘스타벅스’라는 단어가 미국에서 갖는 의미와 한국에서 갖는 의미도 다르듯이, 번역 과정에서 수없이 많은 단어가 서로 부딪힐 것이다. 결국 언어적 장벽을 맞닥뜨리는 것은 모든 번역서의 숙명이다. 번역자는 이 장벽을 어떻게 넘어갈 수 있을지 혹은 우회할 수 있을지 끝없이 고뇌해야 한다.





    중요한 것은 ‘텍스트 감각’이다



    기존의 번역 가이드나 글쓰기 책에서 자주 언급되는 ‘번역 규칙’에는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다.

    ‘문장의 길이를 살려라’ ‘한국어다운 문장을 써라(혹은 ‘번역투’를 피하라)’ ‘문체를 살려라’ 등등. 그러나 영어 문장을 자주 접한 독자라면 금세 알아채겠지만, 영어에는 관계대명사 that이나 what 혹은 which 등으로 연결된 긴 문장이 자주 등장한다. 이때 문장을 적절히 끊지 않는다면 전체적인 맥락이나 의미는 사라져버리고 뜻을 알 수 없는 지루한 문장이 나오고 만다. 또 ‘한국어다운’ 문장이란 무엇일까? 가령 1920년대에 정지용 시인이 쓴 「향수」라는 시에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 나온다. ‘그곳이 참하 꿈엔들 잊힐리야’

    ‘잊힐리야’는 피동형 동사임에 틀림없다. 이 문장을 만약 ‘그곳을 참하 꿈엔들 잊으리오’라고 고친다면 어떨까. ‘잊힐리야’라는 동사가 주는 아련한 느낌은 사라져버리고, 보다 더 단호한 인상을 주는 문장이 될 것이다. 과연 ‘한국어다운’ 문장을 고집하는 것만이 좋은 선택일까?

    이 같은 ‘번역 규칙’의 문제는 대부분 문법grammer과 문체style를 제대로 구분하지 않고 뭉뚱그려 진술한다는 것이다. 문법은 옳고 그름을 따질 수 있는 항목인 반면 문체는 취향의 문제다. 다시 말해서 ‘이렇게 써라/쓰지 말라’는 규칙은 문법적인 항목에만 적용할 수 있는 것이지 문체에 적용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문체는 글을 쓰는 목적과 의도, 글을 쓰는 사람의 취향, 독자들에게 미치는 효과 등을 고려해 선택하는 것이지 옳고 그름으로 가를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물론 기존의 번역 규칙들이 전부 무의미하다는 것이 아니다. 가능한 한 피동형을 쓰지 말라는 것이나 ‘~에 대해’를 쓰지 말라는 조언은 유용하다. ‘~의’나 ‘~에 대해’를 줄이면 한 문장 안에 들어가는 동사가 더 다채로워지고 의미는 한층 선명해진다.

    중요한 것은 ‘텍스트 감각’이다. 실제로 초보자와 경험자의 차이는 텍스트 감각이 있느냐 없느냐로 구분된다. 글을 자주 접하지 않는 사람들은 잘못된 글을 보고도 이상함을 느끼지 못한다. 텍스트 감각은 무수히 많은 글을 읽고 번역을 하고 문장을 다루는 과정에서 무의식적으로 습득되는 것이다. 시험공부를 하듯이 단기간에 습득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구체적이고 체계적인 설명을 통해서 좀더 짧은 시간 안에 습득할 수 있도록 도움을 줄 수는 있다고 생각한다. 그렇지 않다면 이 책이 나올 이유는 없었을 것이다.





    번역 실전 노하우



    ·번역은 말을 옮기는 작업이 아니다

    - 만약 언어적 지식만으로 번역을 한다면 결코 구글을 앞지를 수 없다. 구글은 0.1초 만에 A4 수십 장을 번역해낸다. 게다가 공짜이기까지 하다! 그렇지만 번역은 단순히 말을 옮기는 작업이 아니다. 아인슈타인에 대해 설명하는 글을 번역하려면 상대성이론을 알아야 하고, 빈센트 반 고흐에 대한 글을 번역하려면 그의 생애나 인상주의 화풍을 알아야 한다. 무슨 상관이냐고? 책은 수없이 많은 정보를 토대로 세워진 건축물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번역가는 만물박사가 되어야 하고 또 될 수밖에 없다. 이런 면에서 번역가에게 반드시 필요한 자질 중 하나는 바로 무엇이든 빨리 배우는 능력이다.



    ·어떤 ‘내용’을 어떤 ‘목적’으로 어떤 ‘대상’에게 전달하는가

    - 글을 쓴다는 것은 곧 끊임없이 선택하는 것이다. 물론 번역도 마찬가지다. 번역자가 중요한 이유는, 번역자의 선택에 따라 메시지 전달 방식이 미묘하게 달라지기 때문이다. 원문은 이 선택의 정당성을 판단할 수 있는 기준이 된다. 하지만 그것만이 전부는 아니다. 번역 결과물을 활용하고자 하는 목적 역시 고려해야 한다. 저자가 글을 쓴 목적과 번역자가 그 글을 번역하는 목적은 다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오바마의 연설문을 번역한다고 가정하자. 만약 『세계의 명연설』 같은 책에 실릴 연설문이라면 수사적 전통의 차이로 ‘명연설’에 적합하지 않은 부분이 있다면 한국어 규범에 맞게 변형하거나 각색해야 한다. 반면 『연설로 배우는 영어』 같은 영어 학습서에 실릴 연설문이라면, 수사적 효과보다는 문장 단위의 직역을 우선해 번역문에서 원문의 형태가 그대로 보이도록 해야 할 것이다.



    ·익숙한 말들과 거리 두기

    - 글을 쓰려면 다양한 어휘와 표현 사이의 미묘한 차이를 민감하게 느낄 줄 알아야 한다.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한 말도 내가 미처 알지 못했던 의미가 숨겨져 있지는 않은지 낯설게 보는 습관을 들여야 한다. 글을 다루는 사람에게 언어 인식은 필수 역량이다. 언어 인식을 높이는 방법, 다시 말해 말에 민감해지는 가장 손쉬운 방법은 익숙한 말들을 거리를 두고 바라보는 것이다.



    ·괄호를 칠 것인가, 주석을 달 것인가

    - 어떤 정보를 괄호 속에 넣을 것인지 주석에 넣을 것인지 판단하는 기준은 동일하다. 즉 메시지의 흐름에서 벗어난 정보는 괄호나 주석으로 처리해야 한다. 하지만 독자의 입장에서 보자면, 주석은 괄호보다 훨씬 더 가독성을 해친다. 따라서 괄호를 넣지 않는 것이 최선의 선택이고 주석은 최후의 선택이다. 괄호를 처리할 때 명심해야 할 사실은 괄호 속에 들어 있는 정보가 괄호 밖 텍스트 흐름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 면밀하게 가늠해보는 것이다. 가독성을 높인다는 명목 하에 괄호를 기계적으로 풀어버리면 가독성은 오히려 더 떨어지고 나아가 이해할 수 없는 텍스트가 나올 수 있다. 닫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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