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t's Cinema Party? 똥파리!

Let's Cinema Party? 똥파리!

분노해도 괜찮아, 부조리한 세상에 날리는 똥파리 펀치!

100도씨 영혼 양익준의 필사적 날갯짓




세계 영화계의 양익준에 대한 찬사

*“<똥파리>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영화” _<해리 포터> 배우 엠마 왓슨

*“양익준 감독은 어떤 에너지가 느껴지는 사람이다. 뜨거운 에너지.” _<꽃보다 남자> 배우 오구리 슌

*“내가 일반인이라고 한다면, 양익준 감독은 타고난 배우다.” _영화감독 박정범

*“가장 뜨거운 작품을 연출한 가장 뜨거운 배우.” _부산국제영화제 프로그래머 이상용





인터뷰이 양익준은 누구인가?



수십 편의 영화에 출연해온 베테랑 배우이자〈똥파리〉라는 걸출한 작품을 연출한 감독이다. 2000년부터 본격적으로 배우 생활을 시작해 단편영화와 장편영화를 가로지르며 인상적인 연기를 펼쳐왔다.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강적〉〈품행제로〉〈해피 에로 크리스마스〉〈집 나온 남자들〉등 상업영화에서 힘 있는 연기를 보여준 것은 물론,〈 길 잃은 시간〉〈낙원〉〈드라이버〉〈인간적으로 정이 안 가는 인간〉〈연인들〉등 작품성을 인정받은 독립영화에서 비중 있는 역할을 뛰어나게 소화해냈다. 2005년에는 미쟝센단편영화제에서〈인간적으로 정이 안 가는 인간〉으로 연기상을 수상했고, 같은 해 첫 연출작인 중편영화〈바라만 본다〉로 서울독립영화제에서 관객상을 수상했다. 이후 단편영화〈그냥 가〉〈아무 말도 할 수 없다〉를 연이어 연출했으며, 2008년에는 생애 첫 장편영화인〈똥파리〉를 만들어 60여 군데에 이르는 세계 유수의 영화제에 초청을 받고 스물네 개에 이르는 상을 받았다. 그 뒤에도 단편영화〈디파처〉와 옴니버스영화〈애정만세: 미성년〉을 연출해 의미 있는 작업을 이어나갔다. 현재는 그동안 지친 몸과 마음을 다독이며 휴식의 시간을 보내고 있다.





기획의도



한국 사회의 폭력을 성난 눈으로 돌아보다

2009년 겨울, 용산 참사가 있었다. 말 그대로 ‘참사’였다. 남일당 건물에서 농성하고 있던 철거민 5명과 경찰 1명이 사망했다. 그런데 폭력을 휘두른 용역깡패와 경찰 특공대, 그들 가운데 어느 누구도 처벌받지 않았다. 정작 구속된 건 살아남은 다른 7명의 철거민들이었다. 그리고 또 다른 참사, 2009년 봄부터 현재까지 진행 중인 쌍용차 사태가 있다. 쌍용차 노조원 2,646명은 회사의 구조조정에 저항하다 공권력의 무자비한 폭력에 거리로 내쫓겼다. 삶의 기반이 무너진 노조원과 가족들은 그 후유증에 하나둘 숨지더니, 그 숫자가 현재 22명에 이르고 있다. 그중 자살한 사람은 12명, 국내 자살률의 15배에 달하는 수치다.

한국 사회의 이 모든 폭력은 어디서 왔을까? 단지 공권력의 문제만은 아닐 것이다. 공권력 투입 전에는 용역깡패가 있었고, 사건이 종료(?)된 후에는 시민들의 폭넓은 무관심이 있었다. 양익준은 바로 이 지점을 집요하게 파고든다. 어떤 과정, 어떤 환경에서 폭력적인 인간이 탄생하며, 무엇이 우리를 일상의 만연한 폭력에 둔감하게 만드는가. 어째서 끔찍한 폭력이 멈추지 않고 계속되며, 그것을 소멸시킬 방법은 또 어디에 있는가. 혹자는 〈똥파리〉에 난무하는 살벌한 욕설과 무지막지한 폭력이 불편하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것이 단지 ‘선정적’ 폭력이 아니라, ‘성찰적’ 폭력이라는 데 〈똥파리〉의 가치가 있다. 양익준 감독은 폭력의 과정을 진지하게 그려내고 그 극복과 화해의 길을 모색한다. 끔찍한 폭력 앞에 할 말을 잃은 한국 사회가 양익준을 주목해야 하는 까닭이다.



세상의 오물 위에서 날다

양익준은 <똥파리>에 자신의 삶이 상당 부분 투영되어 있다고 말한다. 이 책에는 그런 그의 삶에 관한 이야기가 진솔하게 담겨 있다. 그가 세상의 폭력을 처음으로 인지한 건 ‘가족’ 안에서였다고 한다. “항상 뭔가가 처절히 뽀개져 있고, 집에 들어가는 것이 무슨 흉가에 들어가는 것 같았다”고 회상할 정도로, 아버지와 어머니의 다툼이 심했다. 어린 양익준은 점점 집을 멀리하게 되었고, 친구들과 어울려 술 마시고, 담배 피우고, 본드 불고, 숱하게 경찰서를 들락거렸다.

밖으로 나돌면서 폭력적 상황도 수없이 겪었는데, 흥미로운 건 그는 항상 폭력을 휘두르는 입장이 아닌 폭력을 당하는 입장이었다는 것이다. 양익준은 역설적이게도 폭력의 스트레스를 누군가에게 맞으면서 풀었다. 거친 제스처와 달리 심성은 연약했던 것일까? 아니면 폭력의 무게를 한없이 가볍게 만들고 싶었던 것일까? 그 이유는 명확히 알 수 없지만 〈똥파리〉의 주제의식이 십대의 경험에서 비롯됐다는 것은 분명하다. 독자들은 한국 사회의 폭력을 온몸으로 겪어낸 인간 양익준의 삶을 좀더 깊이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영화에서 발견한 희망, 나는 아직도 모험을 꿈꾼다

양익준에게 영화는 일이라기보다는 삶이다. 한창 방황하던 십대 때에도 배우의 꿈을 결코 놓지 않았고, 6년봉 1,500만 원의 시절에도 ‘포기’라는 단어를 떠올리지 않았다. 오히려 상황이 어려울수록, 그 어두움을 돌파하는 좌표로 삼아왔다. 그것은 영화가 그에게 보여준 자유의 힘, 치유의 힘 때문이었다. 현실의 폭력에 억눌려 있던 한 영혼은 영화라는 매개체를 통해 욕망을 건강하게 분출하고 다시 삶을 살아갈 힘을 얻었던 것이다. 배우에서 시작된 영화 작업이 연출로까지 이어진 것도, 어떻게 하면 좀더 자신의 욕망을 후련하게 표현할 수 있을까 하는 고민에서였다.

양익준은 아직도 영화적 모험을 꿈꾼다. 그가 영화 작업의 즐거움을 말하면서 “우주를 유영하다 온 듯한 느낌” “대마초나 마약 없이도 마약질을 할 수 있는 어떤 것”이라고 하는 것이 마냥 우스갯소리는 아닐 것이다. 수상이나 대규모 흥행이 아니라, 그저 좋은 동료들과 함께 영화적 모험을 떠나고 싶다는 양익준. 배우로서, 감독으로서, 또 영화 제작자로서 다져온 오랜 경험과 고민의 흔적을 만나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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