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림
알림
알림메세지

eBOOK그는 어떻게 이순신이 되었나

그는 어떻게 이순신이 되었나
  • 저자박종평
  • 출판사스타북스
  • 출판년2011-11-17
  • 공급사(주)북큐브네트웍스 (2012-02-24)
  • 지원단말기PC/전용단말기/스마트기기
  • 듣기기능 TTS 지원(모바일에서만 이용 가능)
신고하기
신고하기
신고하기 정보 입력
  • 대출

    0/1
  • 예약

    0
  • 누적대출

    20
  • 추천

    1
  • 사는 대로 생각하지 말고 생각한 대로 살아라

    - 위기의 순간 더욱 빛나는 이순신의 삶과 경영의 지혜




    어떤 시대, 어느 곳에서나 경쟁과 갈등은 존재했다. 자기 자신과 경쟁하고 갈등하는 것부터, 국가와 민족들의 경쟁과 갈등에 이르기까지 다양했다. 그러나 경쟁에서 승리한 사람, 승리한 집단들은 다른 생각과 태도를 지녔다. 그들은 프랑스의 시인 폴 발레리의 시구처럼, ‘사는 대로 생각하지 않고 생각한 대로’ 살았다.

    이순신은 생각한 대로 살았던 인물이다. 자신의 출세와 영광만을 위해 살았던 인물이 아니다. 그의 삶은 눈물과 사랑 그 자체이다. 그의 일기인 《난중일기》와 보고서인 《임진장초》, 그가 남긴 시와 편지 곳곳에는 그가 생각한 대로 살아간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다.

    이 글은 그의 맨 얼굴을 마주하고 그에게 인생수업을 듣는 이순신 자신의 강의와도 같다. 지극히 평범한 한 사람이 방황과 시련을 겪으면서 스스로를 변화시키고, 학습을 통해 자신과 세상을 바꾼 삶의 이야기이다. 그 자신이 어떤 태도로 살았고, 어떻게 생각했고, 어떻게 고난을 극복했는지, 또 세상과 어떻게 소통했는지, 어떻게 수국(水國)을 경영했는지에 대한 강연이다.





    인간 이순신은 어떻게 영웅 이순신이 되었나



    이순신에 관심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한 번 쯤 “그가 왜 유난히 많은 시련을 겪었을까? 그의 사고방식은 무엇이었을까? 평상시 생활습관은 무엇이었을까? 자기관리를 어떻게 했을까? 부하들과 백성들과 어떻게 소통했을까? 어떻게 자신의 부대와 백성들을 경영했을까?” 하는 질문을 던져보았을 것이다. 이 책은 그런 의문에서 출발해 인간 이순신이 어떻게 영웅 이순신이 되었는지 추적한 책이다.

    그를 위해 저자는 이순신이 직접 쓴 <난중일기>와 그의 보고서인 <임진장초>, 조카가 쓴 최초의 전기인 <이충무공행록>, 이순신이 남긴 시와 편지 등을 정밀하게 분석해 인간 이순신에 대한 궁금증에 대한 해답을 알려준다.

    거대한 광화문의 동상처럼 상징적인 인물이 되어버린 이순신은 사실 우리의 삶을 그대로 대변하고 있었다. 어느 시대나 위기의 순간이 있고 그 위기를 선두해서 헤져나가는 인물이 있다. 지극히 평범한 한 인간이 방황과 시련을 겪으면서 스스로를 변화시켜 세상을 바꾼 이야기는 그리 먼 이야기가 아니다. 그도 일기를 쓰고 어지러운 마음을 털어내려 산책을 하고 자식에게 애틋하고 어머니를 사랑했던 보통의 가장이었다. 고독했으며 술을 좋아하고 분노하고 통곡하기도 하는 인간적인 면모는 우리와 다르지 않았다.





    그는 이렇게 이순신이 되었다!



    책 속의 이순신을 따라가면 감히 접근할 수 없고 흉내조차 낼 수 없을 것 같은 영웅의 벗겨진 가면을 볼 수 있다. 진짜 이순신의 모습 속에서 누구라도 그와 같은 생각과 행동을 한다면, 그처럼 위대한 인물이 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고 위로도 받을 수 있다. 그가 우리와 같은 보통사람이었음을 깨닫게 되기 때문이다.

    이순신의 남다른 특징들을 간략히 살펴보자.



    >>지독한 낙관주의자 이순신!

    이순신은 상상을 초월할 수 없을 만큼 지독한 낙관주의자였다. 현대 심리학의 화두인 낙관주의를 이순신은 생활 속에서, 말 속에서, 행동 속에서 실천했다. 이순신에게 있어 가장 위대한 낙관주의자의 모습은 원균이 칠천량에서 대패한 후 선조 임금에게 주장한 글이 대표적이다. 그는 몇 백 척의 전선이 파괴되고 수 만 명의 부하들이 전사했음에도 패배의 암울하고 고통스러운 현실을 보기보다는 “아직도 12척이 있습니다”라며 자신의 무한 긍정주의와 자신감, 희망을 보았다.

    1592년 2월 26일. 날이 저물어서야 방답에 이르러 인사를 마치고 무기를 점검했다. 장전과 편전은 쓸 만한 것이 하나도 없어서 걱정했으나, 전선(戰船)은 그런대로 완전하니 기쁘다(差完可喜).



    >>고독한 눈물의 시인 이순신!

    그는 자신 앞에 놓인 고통스러운 현실 앞에 홀로 고독하게 밤을 지새웠고, 나라와 백성, 어머니를 걱정하면서 눈물을 흘리기 일쑤였다. 또 달 밝은 밤이면 시인이 되어 자신의 아픔을 달래며 노래를 불렀다. 그의 고독은 창조를 위한 고통이었고, 슬픔과 분노를 다스리는 해법이기도 했다.

    1594년 7월 12일. 홀로(獨) 빈집에 앉았으니 심회를 스스로 가눌 수 없었다. 걱정에 더욱 번민하니 밤이 깊도록 잠들지 못했다(寢不能寐). 영의정 유성룡이 만약 내 생각과 맞지 않는다면 나랏일을 어찌할 것인가.



    >>관찰의 대가 이순신!

    이순신은 탁월한 관찰 습관을 갖았다.《난중일기》에는 전체 1,614일중 대략 30여 일을 제외하고 빠짐없이 매일의 날씨가 구체적으로 기록되어 있고, 날씨에 대한 기록도 아주 상세하다. 비에 대한 표현을 보면, 오는 정도에 따라 안개비(煉雨), 가랑비(細雨), 조금 오는 비(作雨), 적당한 비 (雨), 다소 많은 비(雨雨), 소나기(驟雨), 큰 비(大雨), 장맛비(霖雨) 등등으로 기록했을 정도였다. 그가 그렇게 관찰할 수 있었던 것은 그의 관찰력 때문이다. 이순신은 특히 ‘자세히 잘 살펴본다는 뜻의 관(觀)’을 많이 사용했다. 이순신의 하루하루가 관찰에서 시작해 관찰로 끝나고, 끊임없는 관찰을 통해 통찰력을 얻었다는 것을 증명한다. 그는 자신이 관찰한 결과에 따라 비가 오는 것을 대비했고, 적군의 상황을 관찰하고 전술을 결정했다. 또한 끊임없는 지형 관찰로 명량대첩이나 한산대첩과 같은 큰 승리를 거두었다.

    1592년 2월 22일. 흥양 현감과 능성 현감 황숙도와 만호와 함께 취하도록 마시고, 겸하여 대포 쏘는 것도 관찰하느라(觀) 촛불을 한참 동안 밝히고서야 자리를 파했다.



    >>설득의 달인 이순신!

    이순신은 이탈리아 사회학자 프란체스코 알베로니가 결론을 내린 훌륭한 설득자, 즉 “낙관주의자의 옷을 방탄복처럼 입은 사람”이다. 이순신은 잘 들었고, 명령이나 지시보다는 대부분 설득을 했다. 《난중일기》와 《임진장초》에 자주 등장하는 ‘사리를 알아듣도록 잘 타일렀다(개유, 開諭)’라는 표현과 ‘가르친다(敎)’는 표현이다.

    간단한 명령이나 지시로 끝날 일을 부하들이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이유로 권유하고 설득했다. 명령과 지시는 일방적이고 간단한 것이지만, 이순신이 표현한 ‘개유(開諭)’나 ‘교(敎)’는 더 많은 생각과 더 많은 노력이 필요한 것이다.

    1597년 6월 2일. 고을 사람들이 밥을 지어 갖고 와서 먹으라고 하나 먹지 말라고 종들에게 가르쳤다(敎).



    >>숫자의 달인 이순신!

    경영은 숫자이다. 수입과 지출을 통해 현실을 파악하고 사업계획을 수립해야 하기 때문이다. 경영자 이순신은 회계에 철저했다. 《난중일기》도 회계장부와 같은 역할을 한 기록이 남아있다. 이순신은 자신이 운영하는 회사인 5관 5포의 재무 상태를 정확하게 파악하고 그에 맞추어 예산을 짜고, 재원을 확보했다.

    그가 회계를 얼마큼 철저히 관리했는지는 그가 체포되어 압송될 때 단적으로 증명된다. 그는 체포명령을 듣고는 본진으로 돌아와 진중의 비품들을 계산해 원균에게 인계했다. 진영 내 군량미는 9,914석이었고, 화약은 4,000근, 총통은 각 전선에 실어놓은 것 외에 300자루였다는 내용이 그것이다. 이는 평상시에 자신이 보유한 자산을 매일매일 파악하고, 확인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난중일기》에 기록된 회계를 살핀 기록들도 많다.

    1592년 3월 20일. 늦게 동헌에 나가 공무를 보고 각 방(房)의 회계(會計)를 살폈다.

    1596년 3월 14일. 아침에 군량에 대한 회계를 마쳤다.



    >>민족의 자존심을 지킨 이순신!

    이순신의 민족 자존심을 알 수 있는 표현은 당인(唐人)과 당장(唐將)이라는 표현이다. 사대주의가 팽배했던 조선시대의 사대부들은 명나라를 숭배해 명나라 조정은 천자(天子)의 조정이란 뜻으로 천조(天朝), 명의 장수는 천장(天將), 명의 병사는 천병(天兵), 명의 사신은 천사(天使)라고 불렀다. 그런데 ‘당(唐)’이란 표현을 많이 등장한다. 이순신도 ‘천조(天朝), 천장(天將), 천병(天兵), 천사(天使)’라는 표현으로 명나라 조정이나 명에 관련된 사람들을 지칭하기도 했지만, 자신의 생각을 기록할 때는 대부분 ‘당(唐)’이란 표현을 썼다. 명나라 사람을 당인(唐人)으로, 명나라 장수를 당장(唐將)으로 표현했다. 명나라를 천자의 나라로 표현하는 것과 ‘중국=명=당(唐)’이라고 표현하는 것은 아주 다른 의미가 있다. 명나라에 대해 ‘천(天)’을 붙여 쓰는 것은 사대주의의 사고지만, ‘당(唐)’은 이웃나라 중국이라고 보는 객관적인 표현이며, 명나라에 대한 자주적 표현이다.

    1593년 7월 20일. 탐후선이 본영에서 들어왔는데, 병사의 편지 및 공문과 당나라 장수(唐將)의 통첩이 왔다. 그 통첩의 내용이 참으로 괴상하다. “두 치의 적이 당나라 군사(唐兵)에게 몰리어 달아났다”고 하니, 그 거짓됨이 이루 말할 수 없다.

    1593년 9월 15일 일기 이후 메모

    “(발명한 정철총통을) 당나라 사람(唐人)들이 진중에 와서 사격을 시험하고서 잘 되었다고 칭찬하지 않는 이가 없음은 이미 그 묘법을 얻었기 때문이다.



    >>브랜드 홍보의 달인 이순신!

    임진왜란에서 이순신은 최고의 브랜드였다. 연이은 승리를 거둔 이순신의 브랜드는 조선은 물론 일본과 명나라에서도 통했다. 이순신 브랜드의 형성과정을 보면 이순신이 의도적으로 자신을 마케팅하는 모습도 있고, 입소문에 의해 확대시키는 전략적인 모습도 나타난다. 이순신의 전술 중에는 의도적으로 적군을 혼란에 빠뜨리고 공포심을 주기 위해 입소문을 내도록 하게도 했다. 2차 당포·당항포 해전의 승첩 후 이순신은 의도적으로 조선 수군의 위세를 알리는 허위정보 유포전술을 사용했다. 승첩 장계에는 패배한 왜군을 의도적으로 추격하지 않고 도망가게 해 “우리 수군의 위세를 자세하게 말하게 했을 것(備說)이므로, 이후부터는 뒷일을 염려하고 꺼리는 생각이 있을 것”이라고 하면서 그들이 조선 수군의 위세를 소문내도록 입소문 마케팅을 했다. 또한 《행록》에는 이순신이 허위정보를 유포하도록 적군에게 자신의 가짜 장계가 들어가도록 했다는 이야기도 기록되어 있다.

    1592년 6월 14일에는 본영에 있으면서 장계 두 장을 썼다. “신은 이제 전선 수만 척을 이끌고 비장군(飛將軍) 아무개로써 선봉을 삼고 바로 일본을 치러 아무 달 아무 날 떠나겠나이다.” 군관을 보내어 이 장계 한 장을 가지고 가서 서울 가는 길에다 떨어뜨려 적으로 하여금 보게 하였다.



    후천적인 노력은 운도 통제한다



    미국 공군사관학교 교수이며 리더십 전문가인 에드거 퍼이어에 따르면 리더는 선천적으로 타고나는 것만도 아니고, 또한 후천적으로 만들어지는 것만도 아니라며, 타고난 능력과 후천적 환경에 의해 개발되는 공동 작품이라고 했다. 이순신은 타고난 능력보다는 후천적인 노력이 더 지독했던 사람이다.

    미국의 마셜 대장이 1941년 포트 베닝의 군간부후보생학교 졸업식에서 “진정 위대한 지휘관은 모든 난관을 극복해야 함을 기억해야 한다. 전투는 단지 극복되어야 하는 어려움의 하나일 뿐이다. 장비 부족, 식량 부족 등 무엇 무엇이 부족하다는 말은 변명에 지나지 않는다. 어떤 역경에서도 승리해 능력을 나타내는 것이 바로 진정한 지휘관이다”란 말을 했지만, 이순신만큼 완벽하게 실천한 사람은 거의 없다.

    나폴레옹은 “위대한 행동은 우연과 행운이 만들어낸 작품이 아니라, 철저한 전략과 천재성에서 나온다. 위대한 인물이 가장 위험한 시도를 할 때 실패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알렉산더와 시저, 한니발 등과 그 밖의 위대한 인물들을 보라! 그들은 항상 성공했다. 그들이 행운을 타고났기 때문에 그렇게 위대한 인물이 된 것일까? 아니다. 자신의 행운을 통제할 수 있었기 때문에 위대했다. 위인들의 성공을 연구해 보면 그들이 성공하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했다는 사실에 놀라게 된다”고 했다. 이순신도 그랬다. 그러나 나폴레옹과 달리 자신의 야망의 늪에 빠지지 않았다. 오직 자신이 생각한 책임과 의무를 다했을 뿐이다.

    피터 드러커는 전략을 “절대로 적의 방법대로 싸우지 않고, 적이 원하는 대로 싸우지 않는 것”이라고 했다. 이순신은 한 번도 왜군의 방법이나, 왜군이 원하는 방식으로 전투를 하지 않았다. 그는 왜군이 생각하지 못한 방법, 왜군이 원하지 않는 전략과 방법으로 싸웠다. 이순신은 항상 블루오션을 찾았고, 또 만들었다. 때문에 왜군은 레드오션의 핏빛 바다에서 고립되었고, 이순신에 의해 전멸되었다.

    이순신이 만든 블루오션은 왜군은 물론 조선 내부의 왕과 지도층까지 영향을 미쳤다. 설득과 소통으로 규제를 폐지하고, 신뢰를 얻었고, 혁신했다. 이순신은 성공했다. 그러나 그는 자신만의 성공, 특정 조직의 성공을 넘어서 백성들의 성공을 추구했고, 결국 그와 그의 백성들 모두 성공했다.



지원단말기

PC : Window 7 OS 이상

스마트기기 : IOS 8.0 이상, Android 4.1 이상
  (play store 또는 app store를 통해 이용 가능)

전용단말기 : B-815, B-612만 지원 됩니다.
★찜 하기를 선택하면 ‘찜 한 도서’ 목록만 추려서 볼 수 있습니다.